BELOW 1.5℃

우리가 만든
기후위기 현실의 무게

  •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김종남 원장

독일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니체는 이런 말을 남겼다.
“망각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번번이 후회스럽고 고통스러운 기억에 시달린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시간이 흐르면 그 기억이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들끓던 후회도 고통도, 희미해진 기억에 어느새 잦아든다. ‘망각의 동물’이라 일면 다행인 인간.
하지만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까지 망각했다. 기후위기는 인간의 망각을 딛고, 몇십 년 전 우리가 스스로 예견했던 그 현실과 함께 찾아왔다. 지금 전 세계의 화두는 ‘탄소중립’이다. 국가도 국민도 기업도 출연연도, 각자의 위치에서 탄소중립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지금. <Below 1.5℃>는 탄소중립 전문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김종남 원장을 만나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매 순간, 우리는 ‘탄소중립’ 해야 한다

“탄소중립을 왜 해야 할까요?” 인터뷰 시작 직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김종남 원장은 <Below 1.5℃> 매거진 취재팀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탄소중립, 왜 해야 할까. 머릿속에는 그간 뉴스를 통해 봐왔던 극지방 빙하와 영구동토층이 녹아 많은 문제가 파생한다는 것, 호주와 캘리포니아의 산불, 탄소세(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석유·석탄 등 화석에너지 사 용량에 따라 부과하는 세금),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 이슈 등이 스쳤다. 하지만 곧이어 ‘이 문제를 내가 나의 문 제로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 또한 불쑥 올라왔다. 탄소중립이라는 단어에 온통 뉴스에서 다뤄지는 이슈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 앞에서 그저 한 명 한 명의 사람일 뿐이지만 사회 안으로 들어오면 아주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진 구성원이 된다. 그래서일까, 탄소중립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일상에서 탄소중립을 단 한 번도 떠올리지 않고 살아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탄소중립을 위한 생활 속 실천법을 고민하며, 누군가는 탈탄소경제로의 전환에 직격탄을 맞는다. “2050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한 기술개발, 인프라 구축 등을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합니다.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것 또한 엄청난 비용이 드니, 전기요 금이 오를 수밖에 없을 거예요. 2050 탄소중립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은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당장은 국민과 기업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에 누구보다도 빠르게 대응해야 합니다. 국가와 기업이 이에 대응하지 못하면 산업 전반에 엄청난 타격을 입고, 이는 국민 개개인의 생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죠.” 기업의 탄소중립 이슈를 꼽자면 ‘탄소국경세’와 ‘RE100’을 들 수 있다. 탄소국경세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 가에서 적은 국가로 상품 등을 수출할 때 부과하는 관세를 말한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으로,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322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부품 등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도 이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기업이 탄소국경세, RE100 등 기후위기 이슈에 대응하지 않으면 수출 자체 가 막히니 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이 있을 겁니다. 이미 재생에너지 공급이 원활한 나라는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는 기업이 버틸 수 없죠. 재 생에너지 공급 차질로 인해 기업 운영이 힘든 나라는 일자리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김종남 원장은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지 역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는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제 품을 생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데, 그러면 자연 에너지가 풍부한 곳에 발 전소가 세워지고, 그 발전소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리라는 것. 이로써 자연스 럽게 지역균형 발전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이다. 탄소중립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느냐’의 문제다.

혁신적인 에너지기술 개발을 이루어낼 연구현장이자 국가 에너지기술 정책의 싱크탱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1977년 창립 이래 우리나라 에너지산업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며, 국민이 편리하고 안전하며 쾌적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에너지기술 개발 에 매진했다. 최근에는 탄소중립이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면서, 우리나라의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주도할 연구기관이자 국가 에너지기술 정책의 싱크탱크로 큰 책임과 역할을 부여받았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네 가지 대과제를 선정했다.
재생에너지 혁신기술 개발, 수소 공급 및 활용기술 개발, 스마트 에너지기술 개발, 탄소계 에너지 청정 활용기술 개발이다.
“혁신적인 에너지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싱크탱크 역할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분야에서 기술개발이 이루어져야 하 는지, 어느 수준까지 달성해야 하는지, 얼마나 연구해야 하는지, 연구비가 얼마나 필요한지 고민하고 시책을 집행하는 정책입안자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겁 니다.” 김종남 원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탄소중립 기술혁신 추진전략 민간위원장, 수소경제위원회 위원, 탄소중립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그 외 많은 연구 원이 국가 탄소중립·에너지기술 정책 수립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기후에너지 분야 국가기술전략센터 시범운영기관으로 선정되어, 에너지 기술 투자정책 방향 수립에 기여하게 되었다. 2050 탄소중립 실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연구기관인 만큼, 생활 속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바로 ‘음식물 남기지 않기’ 캠페인과 ‘탄소중립 마켓’이다. “음식물을 생산하는 데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음식이 남아서 버리게 되면 메탄가스가 발생하는데,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더욱 강합니 다. 연간 배출량도 매년 10%씩 증가하고 있어요.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개인의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연구원은 ‘음식물 남기지 않기’ 캠페인 을 상시 진행합니다. 그리고 연구원 내에서 중고물건을 거래하는 ‘탄소중립 마켓’도 엽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순환경제’로 나아가야 하기에, 연구원 자체적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종남 원장과 취재팀은 탄소중립 실현 이후의 세상을 상상해보았다. 미세먼지가 없는 깨끗한 공기, 편의성이 더욱 강화된 대 중교통 인프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태양광 패널(김종남 원장은 어느 공간이든 빈 곳이 있으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야 할 텐데, 사람들이 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 일 수 있는 조형미 구현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연구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원격교육과 원격근무의 일상화…… 지금과는 참 많이 다른 세상이겠지만, 꼭 살고 싶 은 세상이다. 탄소중립을 실현한 세상, 우리 모두의 꿈이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절실한 목표다. 2020년 12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대한민국 탄소중립 선언 ‘더 늦기 전에 2050’ 연설을 통해 ‘2050년 대한민국 탄소중립 비전’을 마련했다. 이 생중계 연설이 화제가 되었던 부분 중 하나는 흑백영상이 송출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미세먼지로 인해 회색빛 하늘에 갇힌 현실을 표현하고, 고화질 영상을 이용 할수록 많은 탄소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탄소발자국에 경각심을 환기’하기 위함이다. 이는 인쇄물도 마찬가지다. 인쇄물은 컬러보다는 흑백으로 출력하는 것이 ‘생활 속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매거진 또한 이러한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Interview 코너를 흑백으로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