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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차전지 시장의 주도권 경쟁 가속화,
K-배터리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정책연구실, 슬로먼트(박세란)

2019년 7월. 일본이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소재 세 가지(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졌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경쟁력이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제조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소재·부품·장비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 국외 정세에 따라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약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는 반도체 업계에 큰 타격을 줄 것이 명확했기에,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했지만 결국 ‘강경한 대응’에 힘이 실렸고, 국가와 기업이 ‘소부장의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에 온 힘을 쏟았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 반도체 분야 소부장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최근 이차전지 산업도 이와 유사한 문제에 봉착했다.
우리나라는 이차전지 제조 시 사용되는 원료광물자원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데, 원자재 가격 상승, 미국의 IRA 법안, 유럽의 CRMA 법안 문제가 연달아 터진 것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정책연구실은 해당 이슈를 심층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장보윤 책임연구원, 김상호 센터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재생에너지연구소
에너지저장연구실 책임연구원
장보윤
충남테크노파크
이차전지기술센터 센터장
김상호

Q: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의
주도권 경쟁 가속화

K- 배터리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 해당 인터뷰 내용은 인터뷰이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 해당 인터뷰는 미국 IRA 법안의 세부 지침이 완화되기 전에 진행되었음을 밝힙니다.

우리나라 이차전지 산업 경쟁력의 비결

리튬이차전지의 출발점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계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SONY가 리튬이차전지를 세계 최초로 상업화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우리나라 또한 리튬이차전지 상업화에 성공하여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차전지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을 제치고 선도적인 위치에 올라선 것은 상업화 후 10여 년만.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확고한 경쟁력을 갖춘 것이 주효했다.

장보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중국이 압도적인 성장을 거쳐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우리나라가 상위권을 유지 중이기는 하지만, 선도적인 위치를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굉장히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얘기할 수 있죠.

반도체 산업에 이어 이차전지 산업까지,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나라에서 오로지 뛰어난 기술력 하나로 세계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장보윤

우리나라 이차전지 기술이 경쟁국보다 앞설 수 있었던 배경을 보면, 그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어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초기, 기업이 사용하는 대부분 장비가 일본산이었어요. 하지만 굉장히 빠르게 국산화했죠. 양산 기술이나 대단위 공정 기술력 또한 빠르게 경쟁력을 갖췄고요. 그때의 경험이 근간이 되어, 이차전지 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죠.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인해 반도체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을 때, 이차전지 시장은 이 문제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이차전지 산업의 특성에 있다. 반도체 산업은 공정이 제조 단가의 70% 이상 차지한다. 하지만 이차전지는 소재가 단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산업 초기부터 기업이 주축이 되어 소재 중심의 기술개발을 추진해왔고, 선도국가로 올라설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원자재 문제가 불거졌을 경우, 우리나라는 너무 빠르게, 너무 크게 위기를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장보윤

원자재 가격 상승, 미국 IRA 법안 그리고 유럽 CRMA 법안…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면, 국가 기술의 미래를 봤을 때에는 IRA 법안과 CRMA 법안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 이야기할 수만은 없다고 봅니다. 앞으로 소재의 패권을 누가 잡느냐가 관건인데, 지금 흐름 그대로 간다면 중국 소재가 전 세계를 장악할 수밖에 없어요. 이게 정의롭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 미국과 유럽이 이 흐름에 제동을 건 것이죠.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는 전 세계의 소재 중국 의존도를 꺾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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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장보윤 연구원은 우리나라 이차전지 업계에 닥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기술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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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튬이차전지용 Co-free 양극제 합성 공정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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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세대 이차전지로 전고체전지가 주목받고 있다. 현재 대중화되어 있는 이차전지의 한계인 안전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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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장보윤 연구원은 원료 기술 개발을 통해 소재의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장보윤 연구원은 특히 IRA 법안을 발효하는 과정이 좀더 체계적이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밝혔다. 다양한 논의와 협의 그리고 기술적인 트렌드를 살피며 법안을 꾸렸어야 했는데, 미국 자국 관점에서 진행하다 보니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되는 상황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를 계기로 원자재 중국 의존도를 꺾을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발생할 수 있는 우리나라 기업의 피해를 극소화하는 기술적인 전략 또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장보윤

우리나라는 원료에서 소재를 만드는 기술이 강해요. 그래서 소재 중심의 기술 개발이 이루어졌죠. 연구자 입장에서, 앞으로 이 위기를 이겨내고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원료 기술에 몰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원료 기술 개발을 통해 소재의 단가를 낮추는 기술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이차전지 소재 합성은 보통 있는 원료를 활용해요. 아무도 소재 합성에 최적화된 원료를 고민한 적 없죠.

하지만 이 또한 원료 문제가 근본적으로 안정화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장보윤 연구원은 기술협력의 다각화가 문제를 해결할 열쇠라고 말했다.

장보윤

개인적으로 우리와 기술협력하기 적합한 나라는 캐나다라고 생각해요. 캐나다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일 뿐만 아니라 원료에 대한 모든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재 기술은 부족하죠. 우리나라는 소재 기술이 잘 구축돼 있으니 기술협력을 통해 서로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브릿지 역할을 출연연이 하는 게 적합할 테고요. 단기간 내에 상호 협력할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더욱 건강한 K-배터리 생태계 구축

장보윤 연구원, 김상호 센터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얼마 후, 이차전지 업계에 청신호가 켜졌다. 기존에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제련·가공한 원료를 수입해야 한다는 기존 규제를 완화하여 비 FTA 국가에서도 가능하게끔 완화한 것이다. IRA 법안의 규제 완화로 한시름 놓았지만, 우리는 우리나라 이차전지 생태계를 어떻게 하면 더욱 건강하게 구축할 수 있는지 고민을 멈춰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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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테크노파크 이차전지센터 이다애 연구원이 3차원 단층영상 촬영을 통해 비파괴 방식으로 이차전지 배터리셀의 내부 구조 및 결함을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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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테크노파크 이차전지기술센터에서는 폐배터리 등급화 사업 수행을 위해 전기차 폐배터리의 성능평가 시험을 진행 중이다.

김상호

충남테크노파크 이차전지기술센터는 이차전지 분야 스타트업, 중소기업의 기술력 강화를 도와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반 조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IRA, CRMA 법안으로 인해 원자재 중국 의존도가 산업에, 특히 중소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중소기업은 중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해 소재를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해왔는데, 이게 불가능해지면 기업은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되겠죠. 원자재 중국 의존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기업은 기업 나름대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할 시기입니다.

김상호 센터장은 최근 이차전지 기업의 흐름이 이전과 달라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대기업은 대형 배터리 제조로, 중소기업은 소형 배터리 제조로 나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타깃이 미국과 유럽으로 집중되면서, 중소기업은 IRA, CRMA 법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국내와 아시아권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중소기업에 새로운 활로가 되기도 했다.

김상호

이차전지는 종류도 사용처도 굉장히 다양합니다. 대표적으로 전기자동차나 ESS에 사용되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핸드폰, 컴퓨터, 드론 등에도 들어가죠. 의료, 국방 분야에서도 많이 사용하고요. 그렇기에 우리 이차전지기술센터는 중소기업들이 이차전지 생태계의 다양성을 깊고 넓은 시각으로 탐색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그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 있는 이차전지 기업을 모두 파악하고 서로 연결하여 견고하고 탄탄한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원자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

그렇다고 해서 중소기업이 원자재 중국 의존도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국가와 기업이 나서서 공급망 다각화에 노력하고 있지만, 다른 방향에도 신경 써야 한다. 바로 폐배터리 순환자원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김상호

원자재를 모두 수입해오니 폐배터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배터리를 폐기하기 전에 재사용할 수 있는지 판단하여 다시 쓸 수 있으면 다시 쓰고, 폐기해야 한다면 유용자원을 추출한 뒤 처리해야겠죠. 그래서 이차전지기술센터에서는 이미 폐배터리를 등급화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장보윤

원자재 공급망을 다각화한다는 것은 공급처를 다각화하는 것도 있지만 재생원료 사용을 통한 다각화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어요. 그래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도 폐배터리 재활용·재사용 분야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요. 다만, 아직까지는 재활용할 수 있는 물량보다는 재사용할 게 많습니다. 따라서 폐배터리 재활용 분야 사업이 어느정도 효용이 있을지 냉정하게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차전지 업계가 처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라는 질문에 장보윤 연구원은 ‘결국 새로운 기술력’이라는 답변을 내놓았고, 김상호 센터장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이라고 답변했다. 많은 국가가 이차전지 분야를 차세대 먹거리로 여기고 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선도적인 위치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국가와 연구기관, 기업 등이 한마음으로 이차전지 산업의 생태계를 탄탄하고 건강하게 구축해 나가는데에 힘을 모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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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비용·고효율 리튬이온전지용
고순도 산화규소 나노분말 제조 기술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재생에너지연구소 에너지저장연구실 장보윤 책임연구원

장보윤 책임연구원의 대표 연구성과는 ‘저비용·고효율 리튬이온전지용 고순도 산화규소 나노분말 제조기술’이다. 이는 금속용융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유도용융 방식을 사용하여, 특수 제작된 흑연도가니에서 저급 실리콘 소재를 20nm 이하의 산화규소 나노분말로 균일하게 제조하는 기술이다. 제조된 균일입자의 산화규소 나노분말은 기존 흑연음극소재에 비해 2배 이상의 용량을 가지며 경제성면에서도 우수한 소재로 평가되어, 연구소기업 창업을 통해 2018년 (주)테라테크노스에 기술이전 했으며, 2019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되었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현재 고성능 이차전지를 위한 신규 실리콘 기반 고성능 음극소재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장보윤 책임연구원은 해당 기술의 특장점을 크게 두 가지로 꼽았다. 고품질의 산화규소 나노분말을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에 적용하면 전기자동차 가격 저하와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에 크게 일조하리라는 것이다. 해당 연구성과는 2019년에 도출된 것으로, 해당 기술은 지금의 전기자동차 대중화 물결에 크게 일조했다. 장보윤 책임연구원은 현재 차세대 배터리로 평가받는 전고체 전지 개발에 나섰다. 지금의 이차전지는 안전성 극복이 최대 난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불나지 않는 이차전지’라는 콘셉트다. 더불어 원자재 문제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는 ‘코발트 프리 전고체 전지’를 개발했다. 현재 개발한 소재와 전지가 기업에 이전되어 사업화될 수 있도록 소재 특성에 대한 시험성적서를 통해 검증받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재생에너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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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테크노파크
이차전지기술개발센터

충남테크노파크 이차전지기술센터는 2011년 ‘수요연계형 리튬이온전지 부품소재 국산화 및 고급기반 구축사업’을 통해 설립되었다. 지역의 이차전지 산업 및 관련 기업의 기술경쟁력을 제고하고, 기업의 생산성 증대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함으로써 경제 활성화 촉진에 기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지난 수 년간의 노력 덕분에 충남지역에는 삼성 SDI와 SK이노베이션 등 대기업을 비롯하여, 포스코케미칼, 솔브레인, 코감 등의 기업이 자리 잡았다. 이차전지 분야 소부장 기업 총 80여 개다. 또한 충남테크노파크 이차전지기술센터는 ‘이차전지관리시스템 산업육성을 위한 기업지원 기반구축사업’을 수주하여 국내 최초로 BMS관을 구축했다. 셀 제조라인 구축을 통해 기업이 개발한 소재를 셀에 직접 적용하고 테스트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충방전기, 항온항습챔버, 열충격기 등을 통해 배터리 개발 및 시험평가를 지원하고, BMS 고장수명 가속시험기, 고장진단 단층촬영기를 통해 수명 및 고장진단을 지원한다. BMS 알고리즘을 검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기능 검증을 위해 기능안전검증시스템(BMS HILS)도 구축돼 있다. 올해에는 스마트 특성화 사업을 통해 이차전지 준자동화 제조 장비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 라인에서 기업은 소재부터 배터리 제조까지 전 공정을 돌려볼 수 있고, 이차전지기술센터는 에러포인트에 대한 자문 역할, 각종 시험성적서를 제공하고자 한다.

충남테크노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