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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가 말하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

  • 이지웅 (부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지금의 물질적 번영은 인류 역사상 이례적이며, 이는 화석연료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지구 생태계에 전례 없는 충격을 가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담보하기 위하여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은 필수적인데, 이는 절대 쉽지 않으며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일이다. 그리고 화석연료 시스템이 가져다주는 편익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지금 현세대는 이 비용을 감당해야 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

고마운 화석연료, 그러나

작년 10월 국내외 언론은 비관적인 어조로 세계 경제가 올해 3.2%, 내년 2.7% 성장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을 전하였다.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이긴 하지만, 사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호모 사피엔스가 35만 년 전 출현했을 때부터 산업혁명 이전인 18세기까지 경제성장률은 영(0)이거나 때로는 음(-)이었다. 우리나라도 고려 시대 백성 대부분은 매일 삼시세끼를 걱정해야 했고, 몇백 년이 지난 조선 시대 때도 그들의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금의 물질적 번영은 오히려 인류 역사에서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전례 없는 발전은 에너지, 특히 증기기관 발명 이후 인류가 능숙하게 사용하게 된 화석연료 ― 석탄, 석유, 가스 ―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가 급성장하며 전 세계가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소비하게 되었다. 그 결과, 석유 등의 화석연료가 언젠가 고갈될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우려와 함께,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성장이 지속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1970년대 후반부터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은 화석연료 고갈이 아니라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배출된 이산화탄소 때문에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표. IMF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
(단위 : %, %p)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안」 배출량 총괄표 - 구분, 부문, '18년, 초안(1안, 2안, 3안), 최종본(1안, 2안)으로 구성
’21년 ’22년 ’23년
’22. 7월
(A)
’22. 10월
(B)
조정 폭
(B-A)
’22. 7월
(C)
’22. 10월
(D)
조정 폭
(D-C)
세계 6.1 3.2 3.2 - 2.7 2.7 △0.2
미국 5.7 2.3 1.6 △0.7 1.0 1.0 -
일본 1.7 1.7 1.7 - 1.7 1.6 △0.1
한국 4.1 2.3 2.6 0.3 2.1 2.0 △0.1
중국 8.1 3.3 3.2 △0.1 4.6 4.4 △0.2
인도 8.7 7.4 6.8 △0.6 6.1 6.1 -

※ 출처 : 기획재정부 보도자료 “ ’22.10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경제전망(WEO) 발표” 발췌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구 온도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 주목한 이는 노벨화학상 수상자이자 물리화학 창시자인 스웨덴 과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Svante Arrhenius)다. 그의 1896년 연구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2배 증가하면 지구 평균 온도가 5~6°C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였는데, 놀랍게도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연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선구적 연구 이후, 지구 평균 온도 변화가 자연스러운 기후 변동 주기의 한 부분인지, 혹은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에 기인한 것인지 규명하기 위한 과학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제 대다수 과학자는 지금의 기후변화는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불가역적인 현상이며, 빠른 시일 내에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생태계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데 합의하고 있다.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

기후변화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화석연료 기반 사회에서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이루어 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각성과 사회·정치·문화·경제 모든 측면에서 부단한 실천을 요구한다. 하지만, 개인의 선의와 자발적 협력에만 기대어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하고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일상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기후 친화적 삶의 방식을 지속할 수 있도록 사회질서와 규범을 새롭게 제도화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경제학은 사회질서 중 하나인 경제질서를 기후 친화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실 경제학자는 온실가스처럼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다뤄본 경험이 충분하다(항상 잘 해결했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의 행위가 의도치 않게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경우, 경제학에서는 외부성(externality)이 존재한다고 한다. 가령, 석탄 발전소 굴뚝에서 그리고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면서 미세먼지가 발생하는데, 이는 ‘부정적 외부성’의 문제로 간주할 수 있다. 그리고 경제학에서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외부성을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훌륭한 대답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 아마 모든 경제학자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탄소가격제가 가장 괜찮은 방식이라는 데 동의한다. 가격 수준이나 부과 방식은 각론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 어떠한 형태로든 온실가스에 대하여 가격을 부과하는 것이 가장 유효하리라는 것이다(사실은 다른 방식을 배운 적이 없다). 탄소세나 배출권거래제가 탄소가격제의 대표적인 예인데, 전자는 탄소의 가격을 정부가, 후자는 민간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해오고 있으며, 탄소세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유력 후보 중 한 명이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적이 있다.

저탄소 사회는 공짜가 아니다

그렇다고 경제학자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마법처럼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말자. 기후변화는 기존의 오염물질 문제와 유사한 측면이 없진 않지만, 지금까지의 지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소위 ‘위키드 프라블럼(wicked problem)’이다. 이전의 환경오염 문제는 그 피해가 시스템 일부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고치는 것’이 가능했지만, 기후변화는 지금의 경제시스템의 공고한 기반인 화석연료 자체가 원인이다. 사실 이러한 규모의 문제는 경제학자 또한 다뤄본 적 없다(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를 더 어렵게 하는 원인 중 하나는 ‘세대 간 문제’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 소위 ‘탄소예산(carbon budget)’은 물리적으로 정해져 있으므로 기후변화는 이를 둘러싼 세대 간 영합 게임(zero-sum game)의 성격을 가진다. 하지만, 다음 세대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에 테이블의 반대편 경기자 자리는 비어 있는 불공정 게임이기도 하다. 우리가 조금의 윤리의식을 갖는다면, 적어도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서 ‘환경은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 빌려 왔다’라는, 다소 식상한 문구는 은유에 그치지 않는다. 현세대가 현재의 기후위기 원인을 고스란히 제공한 것은 아니지만, 현세대는 산업혁명 이후 구축된 화석연료 시스템의 편익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세대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현세대는 적어도 탈탄소 사회로의 교두보를 마련하여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이 공평하다.

그 교두보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방 불 좀 끄고 다니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충실히 따르는 것부터 시작하자(혹은 자식에게 그 잔소리를 하자). 당신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생활 속에서 에너지 소비를 가능한 한 줄이고, 전기나 가스 가격이 오르더라도 누군가를 너무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경제학자가 말하는, 기후변화를 대하는 우리의 첫 번째 자세이다.

※ 이 수치는 지구 기온 상승을 억제할 가능성을 67% 기준으로 놓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