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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의 끝은
시작에 도착하는 것

  • 김병민(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 일러스트 나요

수소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수소 중심의 내러티브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세상은 온통 수소 이야기다. 어딜 가도 수소 생태계는 생명이 숨 쉬는 바다와
녹음처럼 청록색으로 그려진다. 물론 언젠가는 그래야 한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합의한 내용을 거스르려는 게 아니라
진실을 전달하고 싶어서다.
내러티브를 알고 어떤 교훈을 얻을지는 우리가 스스로 뽑아내야 한다.
지구를 푸르게 덮기 위해서는 짙게 깔린 무채색을 걷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수소는 우주는 물론 지구에도 가장 많고 인류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원소 중 하나다.
광활한 바다의 2/3가 수소이고 물의 화학식이 H₂O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안다. 과학 기술에서 수소는 중요한 물질이다. 수소와 결합한 물질이 물과 만나 수소를 잘 간수하지 못하고 분리되는 물질을 화학에서는 산(acid)이라고 말한다.
산-염기 반응은 물질이 수소를 주고받는 행위이다.
특히 물리학자에게 수소는 특별한 존재였다. 우주의 시작에 수소가 있었고 나머지 백여 개 원소가 수소로부터 만들어졌음을 밝혔다. 태양이 수소 핵융합 엔진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으며 핵융합을 지구 위에서 실현했다. 통제가 어려운 막대한 에너지는 인류를 굴복시키는 데에도 사용했지만, 전기로 바꿔 인류 문명에 옮겼다. 수소를 이동수단의 원료로도 적용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독일 비행선 힌덴부르크호의 폭발과 추락 장면을 보고 다루기 어려운 수소에 대한 내러티브를 멈췄다.

3억 5천만 년 전, 지구가 태양에너지를 가둔 물질을 18세기에 꺼내 열에너지로 바꿨다.
이런 ‘자연의 비밀’을 캐낸 사건이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 인프라는 화석연료 기반 위에 설계됐고, 가치사슬을 수직적으로 통합해 운용할 자본기업이 등장하며 효율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로 나아갔다. 근시안을 가진 인류에게 지구적 미래를 위한 장기적 안목과 투자는 사라졌다. 지각에 있던 탄소를 꺼내 연일 넘쳐나는 일회용품과 온실가스를 지구에 쏟아냈다. 그로 인한 기후위기에 직면한 인류는 1.5라는 숫자 아래에서 수소로 눈을 돌렸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통과한 인류는 수소를 정치와 경제 프레임에 넣기 시작했다.
수소는 권력이고 돈이 됐다.

수소는 대기의 산소와 반응해 물을 만들고 에너지를 방출한다. 에너지를 얻는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소는 ‘친환경’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지속 가능한’ 인류의 삶을 위해 수소를 다루는 어떠한 행위도 구원의 행동이자 선언이 됐다. 물론 수소경제는 사람들을 계몽해 기후변화에 대한 근원적 고민을 꺼내게 했다. 이렇게 수소 이야기는 다시 사람들 곁으로 온 것이다. 곳곳에서 수소 이야기가 들린다. 기업들이 수소 영역에 진입하고 관련 주식이 들썩인다. 지자체는 도시 운영에 수소를 도입하겠다고 하고 최근 정당 경선 토론회에서도 수소가 등장했다. 분명 내년 대선에 각 정당 후보도 수소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수소는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는 수소의 탄생과 소멸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관통하는 맥락을 짚어야 한다.

그 마디에는 수소 생산은 물론 저장과 유통, 그리고 통제와 활용이 얽혀 존재한다. 수소는 화석연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물질과 결합해 있는 수소를 꺼내야만 재료가 된다. 수소 생산방식에 그레이/블루/그린이라는 이름표가 붙는데, 지금은 화석연료를 이용해 개질하거나 화학산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생 수소이므로 온실가스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쉽게 말해 그레이 단계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수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장기적으로도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태양과 바람을 이용해 수소를 꺼내 블루와 그린 구역으로 가야 하지만, 지금은 재생에너지를 통한 생산 비용이 수소로 얻는 이득보다 크다. 수소는 간단하지만 다루기 까다로운 물질이다. 가벼워 가두기 어렵고 반응성이 좋아 일정량이 모이면 폭발한다. 최근 수소와 함께 암모니아 물질이 부각되는 이유는 수소 운송 때문이다. 결국, 블루 또는 그린수소를 생산해도 저장하고 유통하기 위한 공급망 구축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늘 달의 앞면만 보기에 달의 뒷면에 어떤 일이 있는지 모른다. 지금 이야기를 견인하는 수소 완성차와 연료전지는 한국이 앞섰지만, 내러티브의 전체가 아닌 부분일 뿐이다. 수소 경제는 당장 거리에 수소차를 몇 대 더 굴릴 수 있느냐로 판가름이 나는 배틀이 아니다. 연료전지는 일종의 발전기다. 수소경제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소비자인 동시에 잠재적인 에너지 공급자가 될 수 있다. 지금처럼 중앙집중형 그리드(Grid)가 아닌 분산형, 지능형 전력망에서 연료전지는 핵심이 될 수 있다. 아니 반드시 돼야 한다. 태양이나 바람 등 자연에만 의존하는 재생에너지로는 스마트 그리드가 어렵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자연으로 인한 에너지 변화가 그리드에 진입할수록 전력망에 복잡성을 만들고 여기에서 예측불허의 문제가 발생한다.

즉, 수소에너지망(HEW)은 지금의 재생에너지 기반의 스마트그리드 모델의 부분이자 핵심이고 에너지 민주화 이야기의 주역이다.

이런 내러티브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다. 생산부터 공급망까지 선결돼야 하고 에너지 시스템 전체의 체질을 바꾸는 거대한 일이며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야 할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은 거꾸로 기술 진입 장벽이 높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가 어려우면 남들도 어렵다. 그만큼 도전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수소를 선택한 근본 목적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소 탐험의 이유는 ‘지구 환경과 인류의 지속 가능’ 때문이었다. 이런 숭고한 탐험의 목적을 시작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 미래 이야기도 우주의 출발점인 수소를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영국의 시인 T.S.엘리엇의 시 한 구절에서 수소가 떠올랐다. ‘우리 탐험의 끝은
우리가 시작한 곳에 도착하는 것,
그리하여 그 첫 시점을 알게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