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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감각들, 이 모든 것을
다시 마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소설가 김기창

지난 4월 기후변화가 사랑에 미치는 영향을 상상한 10편의 소설이 실린 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펴낸 김기창 작가와 덕수궁 돌담길이 내려다보이는
공간에서 인터뷰하기로 약속한 날. 그날은 유난히도 날씨가 좋았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며 나무는 노랗고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고 하늘은 쨍하니 파랬다.
어김없이 찾아온 계절의 아름다움, 마음이 안도감과 경이로움으로 차올랐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길, 책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그 문장이 떠올랐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은 외부적 사물의 규칙적인 회귀에서 기인한다.
밤과 낮, 사계절, 개화와 결실의 순간”
『괴테 자서전』 (민음사)

기후변화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다시 마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늘 안고 산다. 이 두려움을 가르침 삼아, 인류의 앞날에 드리워진 절망을 걷어내야 한다.
우리의 사랑을 지켜내야 한다.
이 책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외면하고만 싶었던 진실을 만나게 한다.
두려움을 넘어서서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기후변화에 관한 첫 소설

인류에게 기후변화는 꽤 오랫동안 화두였다. 학계에서는 꾸준히 관련 논문을 발표했고, 언론은 연일 그 심각성을 다뤘다. 간혹 기후변화가 정말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에 대해 공방이 벌어졌지만, 과학은 항상 증명했고 우리는 점점 몸소 체감했다. 하지만 이 문제가 문학에서 는 잘 다뤄지지 않았다. 서구권 국가에서 문학의 주요 주 제로 기후변화가 등장한 것은 2010년 전후. 우리나라에 서는 올해 출간된 김기창 작가의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이 처음이다.

김기창 작가가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2013년. 평소 구독하던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에 실린 관련기사를 읽고 나서다.
몇 년 후, 김기창 작가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연작 단편의 첫 작품, 「약속의 땅」을 썼다.

“기후변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 주로 북극곰과 같이 북극에 사는 동물을 다루곤 하잖아요. 소설 쓰는 입장에서는 그걸 주제로 삼는 게 부담스러운 일이더라고요.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동물에게 생존의 기본은 영토인데, 지금 북극에 사는 동물들은 영토를 잃어가고 있어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영토를 잃어가는 동물의 현실’이기에 가장 먼저 「약속의 땅」을 쓰게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북극에 사는 동물이 등장하는 것처럼, 이 책에서 다루는 대상은 참으로 다양하다. 시대도 연령도 성별도 나라도 제각각이다. 거기에는 작가의 뜻이 담겼다.
“기후변화는 특정 집단이나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모든 생명체의 삶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갔어요. 그래야만 사람들이 좀더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상상하니, 공감하게 됐다 공감은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힘이다

“적어도 내게는 잊을 수 없는 날들이 모두 날씨와 연관되어 있다.
매화 향기 묻은 차가운 바람 사이로 걷던 구례와 벚꽃 사이로 파고드는 봄볕에
이마를 건넸던 진해··· 적절하게 춥고, 덥고, 따뜻하고, 시원했던 날씨들.
그때의 햇살, 그때의 바람, 그때의 구름.
숲과 빙하와 북극곰과 피노누아 그리고 계절의 감각들.
이 모든 것을 다시 마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여기 실린
소설들의 동력이다.” 「작가의 말」

김기창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궁금해졌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체감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이 소설의 집필을 위해 펜을 들었던 2018년이라고 대답했다. ‘111년만의 최악 폭염’이라는 수식어가 줄곧 따라다녔던 그해 여름. “그해 기억이 많이 나요. 아시다시피 정말 더운 해였잖아요. 더위를 참고 참는데 문득 ‘이렇게 더위가 심하면 사람들이 관공서에 찾아가서 민원을 엄청나게 넣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시청에도 가보고, 쪽방촌에도 가봤어요. 가서 보니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더위를 피할 방법이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쓰게 된 작품이 「지구에 커튼을 쳐 줄게」예요.”

소설가로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관해
발언할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소설을 통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됐어요.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예술이라는 게 뭔가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게끔 하는 역할을 하잖아요.
이런 공감이 조금씩 쌓여가다 보면 개인적인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치와 경제, 과학기술, 예술... 모두 함께 풀어가야 하는 문제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가장 앞에 실린 세 편, 「하버 피버 프로젝트」, 「갈매기 그리고 유령과 함께한 하루」,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
이 작품들은 일명 ‘돔시티 삼부작’이다. 살인적인 더위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돔 형태의 건물을 지어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공간을 만든 미래 배경의 이야기다.

돔시티는 수용 인원의 한계로 모든 사람이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차별과 배제. 그 안에서 사람들은 첨예한 갈등을 겪는다. 이 작품들은 돔시티의 폐쇄성, 폭력성, 차별 등을 고발한다. 김기창 작가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원들에게 돔시티 삼부작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에너지기술의 성장이 그저 에너지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차별 문제까지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기후변화는 근대문명으로 인해 생겨났죠. 문명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니, 문명으로 치유하는 수밖에는 없어요. 이 과정에서 개인의 삶을 바꿔나가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개인의 변화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정치·경제, 과학기술, 예술 등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은 희망적인 이야기를 담아내지는 못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할 뚜렷한 방법이 없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믿고 싶다. 우리는 결국 지구를 지켜낼 거라고.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하지만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인터뷰를 마치며

머지않은 미래에 기후변화에 대한 희망적인 이야기가 담긴
김기창 작가의 소설을 다시 볼 수 있길,
마음속으로 바랐다.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 김기창 소설집 | 민음사

2020.12.10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대한민국 탄소중립 선언 ‘더 늦기 전에 2050’ 연설을 통해 ‘2050년 대한민국 탄소중립 비전’을 마련했다.
이 생중계 연설이 화제가 되었던 부분 중 하나는 흑백영상이 송출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미세먼지로 인해 회색빛 하늘에 갇힌 현실을 표현하고, 고화질 영상을 이용 할수록 많은 탄소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탄소발자국에 경각심을 환기’하기 위함이다.
이는 인쇄물도 마찬가지다. 인쇄물은 컬러보다는 흑백으로 출력하는 것 이 ‘생활 속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Below 1.5°C> 매거진 또한 이러 한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Interview 코너를 흑백으로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