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OW 1.5℃

기후변화의 신호를 최초로 감지하다

  •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기후변화의 4대 지표인 온실가스 농도, 해수면 상승, 해수 온도, 해양산성도가 지난해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럼 과연 기후변화의 신호를 최초로 감지한 과학자는 누구였으며, 당시 과학계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2030년부터 매년 사망자 25만 명 발생

지난 5월 23일 이라크 보건부는 주민 1,000여 명이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날 바그다드 및 나자프 등지의 국제공항 항공편도 일제히 중단되어 입국 비행편이 자국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바로 이라크 전역을 덮친 모래폭풍 때문이었다. 사막지대인 중동에선 해마다 그맘때쯤 강한 모래폭풍이 몰아치는데, 올해는 유독 더 잦고 농도가 짙었다. 이처럼 모래폭풍이 심해진 것은 기후변화로 날씨가 더 더워지고 건조해진 탓이다.

영국의 의학전문지 ‘랜싯’에 의하면 기후변화로 인해 2030년부터 전 세계에서 매년 25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날이 갈수록 모래폭풍 같은 기상이변이 더욱 잦아지고 기온 및 수온 상승으로 오염물질 및 감염병 등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후변화의 주범이 온실효과 때문이라는 사실은 요즘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 이를 제일 먼저 알아낸 과학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 주인공은 바로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요셉 푸리에다. 그는 1822년에 수학적 관점에서 지구의 온도를 처음으로 분석했다.
낮과 밤, 그리고 여름과 겨울 사이의 기온 변화를 조사한 결과, 태양에서 받는 열에너지의 양보다 지구가 훨씬 따뜻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 이는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 어떤 요인이 있음을 나타낸다.
그는 지구의 대기에 의해 태양열이 머물게 되면서 지구의 실제 온도가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를 토대로 계산한 것보다 훨씬 높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온실효과 개념이다.
1856년에는 아일랜드의 존 틴들이 가스에 의해 태양열이 어떻게 흡수되는지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일련의 실험을 진행했다. 여러 기체를 번갈아 가며 실험한 결과, 그는 수증기와 이산화탄소 등이 열복사의 강력한 흡수제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이산화탄소의 농도 변화가 기후변화와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를 제일 먼저 알아낸 셈이다.

연필만으로 슈퍼컴퓨터만큼 정확히 예측

그 후 온실효과가 가져오는 지구의 기온 상승에 대해 최초로 상세하게 밝혀낸 이는 스웨덴의 물리화학자인 스반테 아레니우스다. 그는 빙하기에 대해 연구하던 중 온실가스가 적었던 것이 혹시 그 원인이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2배 상승하면 지구 온도는 5~6°C 상승하게 된다는 내용의 논문을 1896년 스톡홀름 물리학회에 기고했다. 반대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희박해지면 지구는 빙하기처럼 추워지게 된다는 것.

당시 그는 이처럼 복잡한 계산을 노트와 연필만 가지고 혼자서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산화탄소의 농도 증가 폭과 온도 상승의 상관 수치 등을 현대의 슈퍼컴퓨터만큼 놀라우리만치 정확하게 예측해냈다.
그런데 아레니우스는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로 인한 온실효과가 인류에게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기온이 상승하면 인류의 생활 반경이 그만큼 더 넓어지고 먹을거리도 풍성해질 거로 추측해서다.
하지만 당시의 주류 과학자들은 아레니우스의 연구 결과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산화탄소가 증가할지라도 지구 전체 표면의 70%를 차지하는 거대한 대양이 흡수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좀 더 확실한 증거를 발견한 이는 1938년 영국의 증기기관 기술자인 가이 스튜어트 캘린더였다. 그는 1890년에서 1935년 사이 지구가 약 0.5°C 따뜻해졌음을 보여주는 수치를 발표했다. 그는 이 시기에 산업혁명으로 인해 이산화탄소 수치가 10%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와 인간의 탄소 배출을 연결한 최초의 확실한 과학적 연구였다. 하지만 그 역시 이 같은 지구온난화 현상이 인간에게 유익할 것으로 예측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찬반 논쟁

그런 인식이 뒤집힌 것은 1957년 이후부터였다. 미국 스크립스해양연구소의 책임자인 로저 르벨은 바다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할수록 산성화되어 흡수할 수 있는 탄소의 양이 근본적으로 제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후 르벨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한 장소에서 장기간 측정하는 작업을 찰스 킬링 박사에게 맡겼고, 킬링은 1958년부터 사망하기 바로 전인 2005년까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산업화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하와이의 마우나로아 산에서 꾸준히 측정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킬링 곡선’으로 인해 지구온난화에 대한 낙관론은 사라지고 인류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번져 나갔다. 이후 기후변화에 대한 논문의 수가 급증했다. 또한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것은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배출되는 메탄, 아산화질소, 프레온가스 때문이라는 사실이 줄줄이 밝혀졌다. 특히 냉장고나 에어컨의 냉매로 오랜 기간 이용된 프레온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최대 8,000배까지 유해하며, 지구의 오존층까지 파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과학자들은 인간의 산업 활동이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견지했다. 그들은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대신 태양의 밝기 변화 등과 같은 자연적인 요인들을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한 것이다.
이처럼 한때는 기후변화가 정말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또한 그 변화가 인간의 영향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찬반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킬링 곡선’ 같은 꾸준한 연구로 인해 기후변화는 실제로 진행되며, 그것이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과학계는 합의를 거의 이루었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해 인류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관한 실제적인 대응책 및 규제 등에 관한 논쟁은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