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생각할까?

글. 안지석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정책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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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대응 정책 수립을 위해서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인류의 활동 때문이라는 과학적인 합의를 이루고, 이를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합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인간이 경제 활동을 하면서 화석연료를 사용해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또한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관련 1만여 개 이상의 논문 초록을 분석한 결과, 기후변화에 대한 견해를 밝힌 논문 대부분은 인류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했습니다1.

이제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는 기상이변과 자연재해의 모습을 미디어로 쉽게 접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대중의 공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인 문제라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는 있음에도, 이러한 위험이 더 큰 파국을 초래하지 않도록 우리가 적절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하면서 대응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와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본고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01 기후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미국에서 수행한 한 연구는 대중이나 정책입안자가 기후변화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여왔던 이유를 제시합니다2.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 있어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관망하며 신중히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기후체계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 연구에서는 한 예로 미국 명문대 중 하나로 꼽히는 매사추세츠공대(MIT)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기후체계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수학과 과학에 높은 지식수준을 갖춘 MIT 대학원생들도 기후변화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기 중으로 배출된 온실가스를 욕조에 비유3

이러한 현상은 온실가스 배출, 대기 중에 누적된 온실가스 농도, 지구 평균온도가 스톡-플로우(Stock-to-flow)관계를 맺는데 이 관계는 상호 영향을 미치는 데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므로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그 결과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기후체계는 상수(Time constant, 외부 변화에 대한 물체의 응답이 나타나는데 걸리는 시간)가 작은 1차원적 선형 시스템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피드백을 수용하는 데 지연(Delay)이 긴 고차원적 동적 시스템이므로 기후변화에 따른 거대한 영향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미치기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됩니다.

그러나 이전 세대의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의 여파는
우리 세대에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우리가 지금 당장
기후변화에 대응하더라도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에는
분명히 긴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02 개인의 심리적인 요인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유럽의 한 연구4는 사람들이 기후변화 문제보다는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 문제를 더욱 중요히 여긴다고 분석하였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1/7만이 현재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기후변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설문조사에 응할 때,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보이고자 사회적, 정치적으로 올바른 내용을 작성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 바람직함 편향(Social desirability bias)’이라고 말합니다.
즉, 조사를 통해 얻어진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사람들의 수는 실제보다 과도하게 추정되었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적 바람직함 편향'의 예시
03 인류가 진화한 방식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우리가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인류의 진화 방식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5. 인류의 역사는 외부의 위협에서 벗어나 더 오래 살고(생존), 더 많은 후손을 낳기 위한(번식) 여정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야생 포식자와 자연재해로 인해 하루하루의 생존이 위협받는 시대였습니다. 자신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변화나 통계적인 추세가 아닌, 당장 일어난 위협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했습니다. 너무 많은 양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늘 생존을 위협받는 인류에게는 좋은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뇌는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이고
가장 중요한 정보만 습득 하도록 진화했습니다.
식량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거처를 마련해야 안전한지에 대한
정보가 중요하지, 먼 미래가 어떨지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방관자 효과

이처럼 경험에 의한 비논리적인 추론을 ‘인지 편향’이라고 합니다. 인지 편향은 대표적으로 ‘과도한 가치 폄하 효과’, ‘미래 세대에 관한 관심 결여’, ‘방관자 효과’, ‘매몰 비용의 오류’로 나뉩니다. 초기 인류의 생존을 도왔던 인지 편향은 오늘날 기후변화와 같이 장기적이고 복잡한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 01가치 폄하 효과 Hyperbolic discounting

    우리의 인지 능력은 현재가 미래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합니다. 인류 진화 역사에서 먹고 먹히는 문제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편향은 장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 02미래 세대에 관한 관심 결여 Lack of concern for future generations

    진화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의 가족 몇 세대 문제만 관심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부모에서 손자까지의 세대가 우리가 각별히 신경 쓰는 범위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해’는 하지만,우리 관심 밖에 있는 세대를 위해 희생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 03방관자 효과 The bystander effect

    우리는 어떤 위기가 발생했을 때 나 아닌 누군가가 해결할 거라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냥꾼 집단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저편에 야생 동물이 매복해서 우리를 먹이로 삼으려고 한다면, 집단 모두가 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똑같은 행동을 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포식자가 우리를 노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관자 효과는 현대사회의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썩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후변화 해결을 자처하는 리더가 우리 앞에 나타나 위기에 대응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04매몰 비용의 오류 The sunk-cost fallacy

    우리는 현 상황을 유지하면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임을 알면서도 상황을 바꾸려 노력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그동안 쏟은 에너지, 시간, 자원 등이 아깝다고 생각해 그 체제를 쉽게 바꾸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구축된 체제가 더 이상 유익하지 않다고 판명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현 경제체제를 청정에너지 기반으로 전환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지속해서 이어지고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아직도 화석연료 기반의 경제체제를 바꾸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류가 수백만 년 동안 지구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한 행동 양식은 현대에 이르러 기후위기 대응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게 하여 인류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에서 살펴본 여러 요인들이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한 극복 의지를 갖는 데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암울한 미래를 받아들여야 할까요?

기후변화와 같은 전 지구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종은 오직 인간임과 동시에 이러한 문제와 위험을 극복하는 능력을 갖춘 것도 인간뿐입니다.

  1. 1. Cook J, Nuccitelli D, Green SA, Richardson M, Winkler B, Painting R, et al. Quantifying the consensus on anthropogenic global warming in the scientific literature. Environ Res Lett. 2013 Jun 1;8(2):024024.
  2. 2. Sterman J, Sweeney LB. UNDERSTANDING PUBLIC COMPLACENCY ABOUT CLIMATE CHANGE. :4.
  3. 3. Sterman J, Sweeney LB. UNDERSTANDING PUBLIC COMPLACENCY ABOUT CLIMATE CHANGE. :4.
  4. 4. Andrew Oswald, Adam Nowakowski. Climate change complacency in Europe. Available from: https://voxeu.org/article/climate-change-complacency-europe
  5. 5. Matthew Wilburn King. How brain biases prevent climate action. Available from: https://www.bbc.com/future/article/20190304-human-evolution-means-we-can-tackle-climate-change

인간은 과거를 기록·회상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생물입니다.
비록 기후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 진화 방식과 심리편향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당장 인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인간만이 가진 능력으로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할 복잡한 문제를 예측하고 상상함으로써,
원하는 미래를 얻기 위해 현재 인류가 취해야 할 방법을
곧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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